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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주년 제주4·3희생자 미주 추념식 강연 (2023)

제 75주년 제주43희생자 미주 추념식에서 터프츠 대학 플레쳐스쿨의 국제정치학 박사 이성윤 교수의 강연 스피치입니다.

강연 스피치 한글 번역본

여러분,

오늘 우리는 현대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인 제주 4·3 사건을 기억하고 성찰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한국 역사상 평화 시기에 발생한 최대 규모의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이 역사는 국제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에서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채 오랜 시간 방치되어 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사실은 왜곡되었고, 기록은 은폐되었으며, 심각한 오해가 사회 전반에 뿌리내렸습니다. 온 사회가 함께 직면해야 할 진실은 침묵과 공포 속에 묻혀버렸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제주도를 관광객과 신혼부부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섬으로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가적인 이미지 아래에는 훨씬 더 어두운 과거가 존재합니다. 수만 명의 민간인이,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하여,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고문당하고 살해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사건의 완전한 진실은 무엇인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그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방식의 정의와 배상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그 결과 제주 4·3 사건은 지금도 한국 사회와 정치에서 깊은 논쟁과 갈등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폭력의 직접적인 계기는 1948년 4월 3일 새벽에 발생한 무장 봉기였습니다. 약 350명의 남한 노동당원들이 제주 전역의 여러 경찰서를 공격하였습니다. 실제로 화기를 소지한 인원은 극히 일부, 대략 20명에서 30명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임시로 마련한 도구를 무기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봉기는 본토에서 파견된 경찰과 군 증원 병력에 의해 신속히 진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한적인 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국은 제주도 전체 주민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었습니다. 반공주의라는 명분 아래,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폭력의 연쇄가 이어졌습니다. 가장 극심한 탄압은 1948년 10월부터 1949년 3월 사이에 집중되었습니다.

이 시점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습니다. 그 이전과 이후 일정 기간 동안,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남부는 미군정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한국의 초대 대통령과 주한 미군 사령관 간의 상호 합의에 따라 한국군과 경찰의 작전 통제권은 미군의 권한 아래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체제는 1949년 6월까지 유지되었습니다.

미국이 실질적이면서도 법적인 작전 통제권을 행사하던 바로 이 시기에 가장 극심한 학살이 발생하였습니다. 1948년 12월 한 달 동안에만 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1949년 1월에는 단 한 달 사이에 약 3,000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피해자의 대부분은 무고한 평범한 주민들이었습니다. 3,000명 이상의 여성이 살해되었으며, 10세 미만의 어린이도 800명 이상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이후 거의 40년 동안 제주 4·3 사건은 사회적 금기가 되었습니다. 학교 교육, 정치 담론, 공적 공간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체계적인 차별을 받았고, 희생자와 그 가족들, 심지어 그 자녀들까지도 수십 년간 공직 진출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이러한 공포와 강제된 침묵의 구조는 생존자들의 고통을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외부 세력들이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침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진상 규명을 가능하게 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를 통해 비교적 포괄적인 정부 조사 보고서가 작성되었습니다. 비록 추가적인 조사와 연구가 여전히 필요하지만, 이 과정은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부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표명하였고, 2021년에는 법 개정을 통해 국가가 직접 보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분명한 진전입니다. 그러나 제주 4·3 문제는 여전히 여러 차원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몇 해 전, 저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수만 개의 위령비 가운데 상당수는 이름조차 새겨지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이름 없는 희생자들의 위령비가 끝없이 이어진 그 공간에서, 저는 수십 년간의 검열과 침묵이 남긴 깊고도 지속적인 상처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최소한 미국이 제주도민과 한국 국민에게 역사적 인정, 다시 말해 동정과 참회의 표현을 할 책임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제스처는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명확성과 역사적 정직성 위에서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할 것입니다.

올해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시점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미국 정부 관계자, 미 의회 인사, 혹은 주한 미국 대사가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하여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면, 이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가 될 것이며, 오랜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역사는 이러한 도덕적 행위의 선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016년 일본 방문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일본 총리와 함께 서서 기억의 도덕적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기억은 안일함을 극복하게 하고,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논란도 있었지만, 오늘날 역사는 그 방문을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1908년 미국 의회는 청나라로부터 받은 의화단 배상금의 상당 부분을 중국 유학생들을 위한 미국 유학 장학금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이 결정 역시 오늘날 널리 도덕적으로 올바른 선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제 소박한 제안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미국이 제주 4·3을 기억하고, 고통을 인정하며, 희생자들을 공식적으로 기리자는 것입니다. 나아가 언젠가는 제주 4·3 희생자 후손들을 위한 교육 장학 제도까지도 검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들이 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단번에 해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우리를 화해와 신뢰, 그리고 진실에 기반한 공동의 미래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저는 조심스럽게나마 낙관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러한 움직임이 검토되고 있다는 징후가 보이고 있습니다. 진전은 가능합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도덕적 용기,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의 연대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억하고, 경청하며, 함께 고민해 주시는 여러분의 마음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질문이 있으시다면 기꺼이 답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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