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제주4·3 사건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Register)’으로 공식 등재했다.
등재된 기록
물의 공식 명칭은 Revealing Truth: Jeju 4·3 Archives이다.
이는 제주4·3 사건 발생 77년 만에, 그리고 진상규명 노력이 제도적으로 시작된 이후 약 20여 년 만에 이루어진 국제적 승인이다. 무엇보다 이 결정은 제주4·3이 더 이상 지역의 비극이나 국내 정치의 논쟁 대상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건임을 세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순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제주4·3 기록물’이란 무엇인가
이번에 등재된 제주4·3 기록물은 단일 문서가 아니라, 국가 폭력의 발생과 그 이후의 진상규명·회복 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기록군이다.
여기에는 희생자와 유가족의 피해 신고서, 생존자들의 구술 증언, 정부 및 민간 차원의 조사 자료, 재심 판결과 관련된 법적 문서 등 총 1만 4천여 건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이 기록물에 대해 냉전 초기 국가 폭력의 양상을 보여주는 보편적 사례이며 침묵과 억압을 넘어 진실 규명과 사과, 보상으로 이어진 과정 자체가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즉, 이번 등재는 ‘비극의 결과’만이 아니라, 기억을 복원해 온 시간과 노력 전체가 세계사적 가치로 인정받았다는 데 핵심이 있다.
제주4·3, 왜 이제야 세계의 기억이 되었는가
제주4·3은 오랫동안 말할 수 없는 역사였다.
사건 직후부터 약 40년간, 제주4·3은 교육 현장과 공적 담론에서 철저히 배제되었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사회적 낙인과 제도적 차별 속에서 침묵을 강요받았다.
이러한 침묵은 단지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았다. 제주4·3이 국제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특별법 제정,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 대통령의 공식 사과, 그리고 보상 제도 도입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기억을 회복하는 정치적·윤리적 전환을 만들어냈다.
유네스코 등재는 바로 이 전환의 국제적 귀결이다.
‘기억의 정치’에서 ‘기억의 윤리’로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단순한 명예나 상징이 아니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제도는 “보존해야 할 기록”이 아니라, 기억되어야 할 책임을 강조한다.
이제 제주4·3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폭력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침묵이 어떻게 비극을 연장하는지,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뒤늦게나마 책임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보편적 사례가 되었다.
남은 과제: 세계기록유산 이후의 제주4·3
유네스코 등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기록은 보존되었지만, 기억은 여전히 실천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제주4·3을 어떻게 교육하고 설명할 것인가, 기록물 접근성과 다국어 번역은 어떻게 확대할 것인가, 제주4·3의 경험을 오늘날의 인권·평화 담론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이제 한국 사회만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침묵의 역사가 세계의 기억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기억이 세계의 언어로 기록된 지금, 제주4·3은 더 이상 잊혀질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