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실종'과 법의 무지-1

김동현 문학평론가/책임에디터

2021년 5월 4일

제주 4·3 특별법이 개정된 이후 4·3 이후의 과제에 대한 논의들이 시작되고 있다. 제주작가회의는 이번 <제주작가> 봄호(72호)에 지난 20년 동안의 4·3 특별법 체제를 반성하면서 향후 과제를 짚어보는 <'법-제도'에 감금된 4·3>을 특집으로 꾸몄다. 제주투데이는 저자와 제주작가회의의 동의를 얻어 특집 기사를 연재한다.

환호와 박수만 가득한데...

환호와 박수가 봄날 꽃처럼 지천이다. 희망과 기대는 벚꽃으로 만개(滿開)다. “이제야 봄이 됐다”는 함성이 귀를 울린다.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관덕정 광장에서는 유족들과 정치인, 4·3 관련 단체들이 손을 잡고 만세를 불렀다. 그 환호성의 의미를 모르는 바 아니다.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개정안은 정치적 공방만 거듭하다 자동 폐기되었다. 민주당은 법안 처리에 미온적인 국민의 힘 때문이라고 했고 국민의 힘은 배보상을 반대한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4년 전 총선에서도 여야간 책임공방은 이어졌다.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안의 쟁점은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규정과 불법 군사재판의 무효화였다.

배보상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그것이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의 실현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4·3 당시의 국가폭력에 대해서 사과를 했다. 2018년 4·3 70주년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 폭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국가의 불법적 행위를 국가 수반이 인정한 것이다. 보상이 아닌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4·3 당시 이뤄졌던 군사재판 역시 그 불법성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제주 4·3 생존 수형인이 청구한 재심에서 법원이 ‘공소 기각’ 결정을 내리고, 행방불명 수형인에 대한 무죄 결정이 내려진 것도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2021년 3월 16일 제주 4·3 수형인 335명이 제기한 재심 청구 공판에서 재판부는 무죄 선고를 내렸다. 이른바 수형인 명부에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있지만 재판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공소장, 공판기록, 판결문 등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형사소송법상 죄의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재판부는 이들의 죄를 증명할 수 없기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희생을 거론하면서 “지금까지 그들이 ‘과연 국가는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몇 번을 곱씹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335명 모두가 무죄를 선고받은 데다, 국가의 책임 문제를 거론한 재판부의 판결문 내용 역시 화제가 되었다. 언론은 이날을 눈물과 환호로 얼룩진 재판이었다고 보도했다. 4·3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처음 수형인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내려진 재판이었던 만큼 언론의 관심도 컸다.

특별법 개정과 수형인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내려지면서 ‘새로운 봄’에 대한 지역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73주년 추념식 캐치프레이즈 역시 ‘돔박꼿이 활짝 피엇수다’로 정해진 것도 바로 이러한 기대감의 반영일 것이다. 제주 4·3 특별법 제정과 21년만의 개정, 그리고 이어진 사법부의 판단은 제주 4·3을 비롯한 과거사 문제 해결의 모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4.3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제주 4·3의 진실을 향해 던지는 우리의 화살이 과녁을 향해 제대로 날아가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4·3 특별법 개정으로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의 근거가 마련되고 3월 16일의 선고 공판에서 수형인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내려졌지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인가. 물론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4·3 진상규명운동사의 지난한 과정을 복기하면서 지금까지의 성과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4·3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열린 도민 보고대회에서 ‘새로운 봄’을 말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 모든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4·3의 진실’이 ‘법-제도’의 내부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인지 따져야 한다. 아감벤이 지적했듯이 법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사법적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수형인에 대한 무죄 선고가 내려진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가 국가 책임의 문제를 말했지만 군사재판의 불법성, 나아가 군사재판의 무효화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4·3 특별법이 개정이 되었지만 2001년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한 자들’로 규정된 존재들은 여전히 말해지지 않는다. ‘법-제도’에 기대어 말하는 제주 4·3이 우리가 말하는 ‘4·3의 완전한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여전히 ‘법-외부’에 남아있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법-제도’의 내부만을 지향할 때 4·3은 ‘법-제도’로 축소되고 왜소화될 수밖에 없다. 4·3이 형해화된 조문으로만 남는다면 그것이야말로 ‘4·3의 실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법의 이름만 남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4·3의 진실’은 아닐 것이다.(2회에 이어집니다)

출처 : 제주투데이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