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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배·보상 차등지급은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일"

박소희 기자

2022년 10월 27일

4·3희생자유족회, 과거사 청산 절차가 분란 야기? "경계해야"
4·3특별법 정신에 입각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 마련 촉구

정부가 제주 4·3 희생자에 관한 배·보상 기준과 관련해 나이 등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자 희생자 유족회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9일 제주투데이가 보도한 기사(☞제주4·3희생자 배·보상, 연령에 따라 다르게?…파장 예상)관련, 16일 4·3희생자유족회는 성명서를 내고 “희생자의 생명에 배상등급을 매기겠다는 것은 희생자를 두 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차등지급 원칙 배·보상안을 철회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제주4·3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용역은 이달 말 마무리된다. 검토안에 따르면 지원금액과 관련해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기초로 하는 ‘손해3분설’을 원칙으로 적극적 손해(의료비 등)와 소극적 손해(급여 등), 정신적 손해(위자료) 등을 보상한다.

이중 소극적 손해의 경우 주로 보험금이나 손해배상액을 계산할 때 이용하는 ‘호프만식 계산법’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익 즉 ‘일실이익’을 산정한다. 4·3 당시 희생 당하거나 행방불명된 당사자의 당시 평균임금(또는 월급여액)에 취업 가능기간을 곱한 값에 생활비 등을 공제한 금액이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4·3 당시 10세였던 희생자와 70세였던 희생자 간 지원금액은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에 유족회는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족회는 "보상에 대한 차별지급이 이뤄질 경우 유족들 내부적으로 분열을 조장하고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양산시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며 "과거사 청산 절차가 되레 분란을 야기하는 상황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극히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3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기준은 '정의로운 과거사 청산'이란 4·3특별법 기존 정신에 입각해 이뤄져야 한다"며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법실증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에 대한 평등성의 원칙을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제주의 봄은 왜 아직도 요원하기만 한 걸까? ”
- 차등지급 원칙 배․보상안 철회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 마련 요구

개정된 4․3특별법에 따른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배․보상기준 제도화에 관한 연구용역이 막바지에 달하고 있다. 조만간 제출되어질 용역결과 보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보완입법이 이뤄질 예정이며, 그를 근간으로 본격적인 4․3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들이 제시될 것이다.

그런데, 위자료 등에 관한 연구용역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한국법제연구원 및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그간 연구해온 검토사항을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정신적 손해 등 손해3분설 원칙하에 제시된 배․보상의 기준안에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산정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제시된 기준안에 따르면 소극적 손해에 대한 보상개념으로 제시한 ‘일실이익’의 경우 희생자의 연령,성별,직업 등에 따라 차등 산정하게 되어 결국 희생자별로 지급액의 편차가 극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위 생명의 값어치에 대한 인위적인 판단을 통해 희생자의 배상 등급을 매기겠다는 의미로 이는 희생자를 두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이념이며 절대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서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국가는 대한민국 국민 하나하나 모두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할 헌법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나감에 있어 차별성과 작위성이 혼입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해야 하며, 혹여 불순한 여타의 것으로 존엄의 가치를 대체하려는 시도조차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의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하며, 항상 보편적이며 평등하게 여겨져야만 한다. 4․3희생자에 대한 차별적 보상금액 산정이 절대 이뤄져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또한, 보상에 대한 차별지급이 이뤄질 경우 유족들 내부적으로 분열을 조장하고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양산시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어 가기 위하여 실시하는 과거사 청산의 절차가 도리어 분란만 야기하며 과거로의 회귀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70여년 인고의 세월동안 폭력과 시련을 온몸으로 버텨냈고, 무너져내리는 슬픔과 아픔을 꿋꿋이 견뎌냈다. 그러면서도 절대적 가해자였던 국가공권력의 진정한 사과와 반성을 학수고대 기다려왔다. 최근 4․3특별법 개정과 재심재판을 통한 무죄판결 등 다양한 낭보들이 들려오며 우리 유족들은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잡았던 응어리가 풀어짐을 느꼈다. 대통령의 거듭된 공식 사과와 4․3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국가 행보에 많은 기대와 믿음을 키워 왔으며,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4․3추념식 추념사를 통하여 “정부는 한 분 한 분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배상과 보상을 통해 국가폭력에 빼앗긴 것들을 조금이나마 돌려드리는 것으로 국가의 책임을 다해 나가겠다”고 다시 한번 약속하며, 배상과 보상에 있어서도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며 유족들을 위로하였다. 4․3의 진실을 밝히고 그를 통해 화합과 상생, 평화와 인권의 큰 그림을 그려나가겠다는 나름의 약속이 생겨난 셈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구용역 검토결과를 접한 우리 유족들은 깊은 좌절감과 함께 국가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배․보상에 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불과 4개월전에 공언한 대통령의 약속조차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것이다. 향후 이어질 후속절차들이 제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심히 우려스럽다.

이에 우리 유족회는 정부에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전한다. 정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배․보상에 대한 연구용역에 대하여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고 법실증주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에 대한 평등성의 원칙을 반영해야 한다. 법기술이나 복잡한 정치역학구조는 핑계가 될 수 없다. 또한 늘상 구실로 삼는 재정상 부담에 대해서도 일부 공감은 하지만 근원적 면책 사유가 될 수는 없다. 그동안 미진했던 과거사 청산에 대해 국가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의 책임을 실행할 것을 촉구한다. 그 첫걸음이 현재 검토되고 있는 희생자에 대한 차등지급의 원칙을 철회하고, 좀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에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이에 수반하는 어떠한 제안도 수용할 수 없음을 천명한다.

밝히건대 우리의 이러한 요구가 여타 협상에서 제기되는 단순한 제안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 국가공권력에 의해 짓밟혔던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주장이며 절대적 가해자였던 국가는 우리들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해야할 의무가 있다.

덧붙여, 우리들의 요구사항은 4․3특별법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을 총론적으로 바로 잡고자 함이며, 배․보상에 대한 각론적 관점을 초월하여 정의로운 과거사 청산을 위한 기준가치로서 인권수호와 공동체 보호를 위한 대승적 결단임을 명백히 밝힌다.

무릇 국가권력의 행사는 합법성이라는 형식적 근거 위에 도덕성, 윤리성이라는 실질적 근거를 모두 만족시킬 때 비로소 올바르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도덕성과 윤리성의 가장 핵심은 정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다. 즉, 국가권력의 행사는 정의로움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국가가 4․3해결을 위해 정의로움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자세로 좀더 진정성 있게 소통의 장에 임해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2021년 8월 17일

출처 : 제주투데이(http://www.ijejutoday.com)
원문: http://www.ijeju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26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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